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행주 기씨 (문단 편집) === 족보상의 시초 (기자~기우성~기순우) === 《행주기씨보(幸州奇氏譜)》와 《청주한씨세보(淸州韓氏世譜》에 따르면 시조는 [[기자조선]](箕子朝鮮)을 창건했던 [[상나라]]의 왕족 [[기자(중국)|기자]](箕子)의 48대손 '''기우성'''(奇友誠)이다. [[고조선]]의 마지막 왕이자 [[마한]](馬韓) [[건마국]][* 현대에는 고고학의 발달로 준왕 집단이 남하하여 세운 나라가 마한 소국들 중 [[목지국]]이 아닌 건마국이라는 게 증명되었다.]의 초대 왕이었던 기자의 40대손 [[준왕]](準王)의 후손인 기자의 47대손 마한 8대 원왕(元王) 훈(勳)에게는 아들로 우성(友誠), 우평(友平), 우량(友諒)의 3형제가 있었는데 우성은 [[백제]]로 가 [[행주 기씨]](幸州 奇氏), 우평은 [[고구려]]로 가 태원 선우씨(太原 鮮于氏), 우량은 [[신라]]로 가 [[청주 한씨]](淸州 韓氏)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. 다만 족보가 대체로 그렇듯이 사료와의 교차검증은 부실하다. 기자 동래설에 대해 자세한 건 [[기자(중국)|기자]] 항목 참조. [[선조(조선)]] 때 [[영의정]]을 지낸 기자헌(奇自獻)의 동생이었던 기윤헌(奇允獻)의 집에 선계의 기록이 있었는데, [[이괄의 난]] 때 소실되었다고 한다. 1688년([[숙종(조선)|조선 숙종]] 24년) 족보를 개편할 때 이곡(李穀)이 지은 기황후(奇皇后)의 아버지 경장헌왕(敬莊獻王) [[기자오]](奇子敖)[* 기씨 중 유일하게 원나라 왕작(王爵)을 받은 인물이다. 사실 한국사에서 이렇게 왕작을 받은 인물 자체가 손에 꼽힌다. 다만 살아서 받은 건 아니었고 기자오가 고려의 충신이었고 딸이 황후가 되었기에 사후추증되었다. 처음에는 영안왕(榮安王)으로 추증되었는데 이후 경왕(敬王)으로 격상된다. 2자호보다 1자호가 더 급이 높기 때문. 시호는 장헌(莊獻)으로 왕호와 시호를 합쳐 경장헌왕(敬莊獻王)이 된다.]의 행장(行狀)을 따라서 [[인종(고려)|고려 인종]] 때 정2품 문하평장사(門下平章事)를 지낸 '''기자오의 5대조이자 기우성의 65대손 기순우(奇純祐)'''를 1세조로 기록하게 되었다.[* 사실 기순우의 위에 한 명이 있는데 바로 그의 아버지인 기문유(奇文儒)이다.] 그러니까 정리하면 시조 기우성은 [[기자조선]] 건국자 기자의 48대손이고, 1세조로 모시고 있는 기순우는 기우성의 65대손이자 기자의 113대손이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